Exhibitions
두 사람, 2017
A barking dog
Silence
Humming Bird & Dog
Chunhee Im, Jongho Park 임춘희, 박종호
21 March – 20 April

이 전시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기획되었다. 우리의 삶과 보다 밀착된 그림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기 위함이 그 첫 번째 이유다. 무릇 모든 예술이 삶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자신을 둘러싼 삶의 모양새를 그림으로 형상화하는 일이 때론 선택을 넘어 마땅히 그래야 하거나 그럴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내밀한 감정의 상태로 그리는 임춘희(b. 1970)와 유년의 기억과 인간성의 단면을 폭로의 그림으로 그려내는 박종호
(b. 1972)가 바로 그렇다. 전시명 <새와 개의 노래>는 이 두 화가의 세계를
각기 새와 개로 이름 짓고 그들의 그림을 노래에 비유한 것이다.

새의 노래.
임춘희는 자신의 삶을 그림을 통해 걷는다. 오랫동안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는 그녀는
숲과 길, 그리고 무엇보다 관계로부터 생겨나는 감정들 사이를 걸어왔다. 인간과 나 사이, 자연과 나 사이에 난 길을 걷고, 때론 길이 나지 않은 곳에 길을 내며 걸어왔다. 여러 감정의 형태, 가령 사랑과 위로, 눈물처럼 내밀한 감정의 형태를 ‘걷는 사람’의 마음으로 담아낸다. 높은 곳에서 숲을 내려다보며 전체의 모양을 그려내기보다, 두 발로 직접 걸으며 살갗에 스치는 바람의 모양과 빛의 온도와 땅의 굴곡과 그림자의 냄새로 그려낸다.
걷기의 시간만큼이나 붓질로 눌러 담은 그녀의 그림은 하나의 감정이며 동시에 그 의미의 테두리를 벗어난다. 임춘희는 감정의 골을 수없이 내고 의미의 길을 새롭게 만든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그림과 언어는 반목하지 않고 서로를 지지한다. 언어는 그림을 통해 형상화되고 그림은 언어를 통해 재정의된다. 임춘희가 들려주는 노래는 걷는 사람이 듣게 되는 새의 노래와 같다. 듣는 이의 깊이만큼 노래 역시 깊다.
하나 하나의 감정이 쌓여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마음의 모양이 된다.

개의 노래.
박종호는 그림을 통해 일어선다. 유년기부터 지속되었던 학대의 경험은 그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었지만, 그는 결국 그림을 그렸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 했다.
누군가의 자식에서 이제 다시 누군가의 부모가 된 그는 아들을 통해 자신을 바라본다. 각인된 기억과 알 수 없는 분노는 도시를 배회하는 집 잃은 개의 그것과 닮아 있다. 설 땅을 갖지 못한 그는 매번 일어서고 무너지기를 반복한다. 그의 그림은 때론 그림이 아닌 곳까지 나아가고
그림의 이유가 아닌 삶의 이유를 묻는다. 소리 없는 개의 울부짖음처럼 그의 그림은 침묵을 받아들인다. 침묵이 언어의 부재가 아닌 극한의 밀도임을 증언한다. 그림의 빈 곳과 발견되지 않은 언어가 만나는 자리에서 박종호는 인간을 지키는 파수꾼인 동시에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나르시시스트가 된다. 그의 그림은 노래에서 이제 응시로 이동한다.

이 전시를 기획한 두 번째 이유는 이른바 우리가 중진작가라 부르는 절반에 가까운 자신의 삶을 그림에 바친 이들이 꺾이지 않고 지켜온 각자의 세계를 기꺼운 마음으로 지켜보고자 위함이다. 길어진 삶의 시간만큼이나 우리는 젊음의 반짝임에 열광하고 있다.
자신의 영토 위에 각자의 세계를 세운 노년의 화가는 젊음의 반짝임을 뒤로하고 시간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남은 이들이다. 근래 미술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진작가와 원로작가 사이에서 중진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20년 이상을 지켜온 붓질은 그 화가의 삶과 서서히 동기화한다. 일반적으로 ‘붓질’을 붓의 움직임(brushstroke)으로 한정하지만,
그 범위를 색채로까지 넓혀본다면 우리는 ‘그림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화면 앞에서 한 인간의 세계와 조우할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일 수 있다. 색채를 머금은 붓의 움직임(선)은 한 인간의 삶의 태도부터 기질까지, 심지어 그 정신의 뼈대까지 담아낸다. 우리는 그림 앞에서 붓질을 통해 화가가 보낸 시간을 역으로 겪어낸다. 서서히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임춘희의 붓질에서, 위태롭고 때론 급진적인 박종호의 붓질에서, 그리고 임춘희의 막 파열되기 시작한 근래의 붓질에서, 박종호의 권태의 붓질에서. 과거는 과거의 그림으로 남아 있으며 미래는 예지적으로 현재를 앞당긴다. 더 이상 존경의 마음이 설 수 없는 오만의 시대 속에서 살아남은 붓질과 화가의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삶으로부터 예술이 솟아나는 광경을 목도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를 감동과 겸허로 이끈다.

예술이 무엇인지 이제는 각자가 규정하는 시대이지만, 변하지 않고 변하지 말았으면 싶은 것이 있다면 우리가 감동이라 부르는 드물고 귀한 경험 바로 그 자체일 것이다.

글 이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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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arking dog 짖는 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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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습_Selfie,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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