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 MYEUNG RO

윤명로

 미묘한 공존으로서의 원형감각 / 김용대(부산시립미술관관장) 

윤명로는 작업의 과정에서 ‘그린다’는 방법론을 활용하고 있지만 실제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무엇을’ 과 ‘그린다’는 두 가지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무엇’을 그리려는 것일까? 또한 그에게 있어서 ‘그린다’는 행위나 방법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결과나 시각적으로 형상 없이 그리고 있는 그 행위에 그 대상은 자연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행위는 형상의 있고 없음에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닌 의도에 근거한 ‘개념적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가 60년대 전후해서 보여주었던 제3회 파리비엔날레 출품작 <회화M-10>은 그 당시 유행했던 앙포르멜적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작품은 굵은 자국이 물감의 마띠에르와 함께 형상을 환기시키는 것이었다. 대칭적이면서 사람의 형상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그 형상 너머에 무엇인가를 담아내려는 의도가 있었으며 그것은 회화적인 방법을 동원한 인간의 실존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60년을 전후한 시기에 한국의 사회상황과 자신의 삶이 반영된 상징처럼 보인다. 

그는 럭펠러 재단의 초청으로 도미하여 프렛 그래픽센터에서 판화 <룰러> 연작을 제작하였으며 이후 제작한 <균열> 연작을 통하여 판화제작과정에서 발견되어진 물질의 화학적 반응에 주목했다. 이것은 단순한 화학적 반응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그것을 ‘선택한’ 윤명로의 관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것은 선택의 행위 이전에 그의 내재적 형식이 매우 뚜렷하게 존재할 때 가능하게 되는 현상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회화적 방법과 개념이 가지는 특이성을 만날 수 있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입까지 진행했던 <균열>연작은 물성의 문제를 체험하는 시기였는데, 이것은 그 작업의 초점이 어떤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물감의화학적 잔응에 의한 불질과 흔적에 주목하고 있음을 의미하나다. <균열>연작은 형식적으로 우연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가 보여준 태도에서 우리는 ‘선택’이라는 매우 중요한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이 작업은 최근에 시도하고 있는 <겸재예찬>에서 그가 보여주고 있는 “형태가 사라진 어떤 그림”은 사실적인 자연의 형상과 개념적인 것의 공존으로 “있는 것과 있으려는 것의 양의성”을 함축하고 있다. 

80년대에 들어서서 그는 <얼레짓>연작을 중심으로 물질적 경향의 작업에서 사군자의 대나무 잎을 연상시키는 브러시 스트록의 강한 필선으로 화면을 지배하고 있었다. 단순한 반복적 행위를 기초로 하여 동양적 정신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이 점은 형식적으로 이전의 작업과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형식과 내용의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의 작업의 전반에 걸친 맥락과 그 호흡을 같이하고 있다. 

<얼레짓>이후 90년대 초반 호암갤러리에서 보여준 <익명의 땅>연작은 <얼레짓>연작에서 보여주었던 정적인 형식에서 60년대 시도했던 앙포르멜적 경향의 격정과 거대한 스케일 그리고 물질감과 판화의 기술적인 과정이 혼재하는 작업이었다. 이러한 형식적인 측면에 더하여 아이덴티티에 대한 문제까지도 의식한 동양적 미학의 관점에 주도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산수화적 이미지는 구체적인 산이나 풍경이 아닌 형상 너머에 있는 인간의 시지각 문제를 점검해 보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바라보는 것과 알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관계 짓는 인간의 미학적 행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최근의 <겸재예찬>연작을 예고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관점은 <얼레짓>연작에서 시도했던 미학적 작업에서 탈피하여 그린다는 신체성의 회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60년대 실존의 문제에서 ,<균열>연작의 기술적이고 특별한 과정을 거쳐, <얼레짓>연작 , <익명의땅>연작, 그리고 <겸재예찬>연작에 이르기 까지 그가 보여준 일관적인 태도는 ‘그린다’는 행위에 대한 관심 그리고 ‘무엇을’이라는 어떤 추상적 개념으로서 화면에서 ‘형태를 사라지게 하는’ 신기한 힘이 되고 있다. 그 무엇은 우리가 쉽게 알아챌 수 없는 개념으로서 윤명로의 개인적인 경험과 체험이 논리성을 가지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의 최근작업 <겸재예찬>은 작품의 제목을 연상해 볼 때 구체적인 자연과 연관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이미지 또는 형상을 연상시키기는 해도 현대미술이 가질 수 있는 태도에 대한 자전적 질문이다. 어떤 논리로서의 그의 회화적 태도는 하나의 증명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그는 그린다는 신체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의 그리는 행위는 논리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그 논리는 그리는 행위를 통해서 존재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지기 되었다 그는 쉽게 알아챌 수 없는 회화적 제스처를 통해서 하나씩 찾아내고 있으며 그것을 증명해가는 과정에서 이미지나 형상들은 그 개념을 찾아가는 실마리가 되고 있다. 그것은 또 다른 모호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화면의 결과가 아주 구체적인 풍경이나 산수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적인 이미지와 추상적 개념의 이 모호한 경계의 공존은 바로 윤명로의 회화가 가지는 특징이 되고있다. 그 양쪽을 공유하고 있는 경계적 특성 그리려는 것과 만들어진 것의 공존, 그리고 시간의 문제로서 ‘시간의 접음’ 등은 그의 회화적 행위가 가지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시각예술에서 재현의 문제나 연상의 문제는 언제나 등장할 수 있는 필수적 요소로서 윤명로의 작업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윤명로는 이러한 연상의 문제를 현대적인 회화형식으로 치환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회화적 행위를 단순한 복제나 재현이 아닌, 보이는 것과 알고있는 것 그리고 그것의 관계를 유지하는 인간의 시각적 인식체계에 대한 곳으로 유도하고 있다. 
형태가 사라진 윤명로의 화면 오히려 그것은 더욱더 형태를 불러내는 접점이 되고 있다. 사실이 아닌 사실성이 윤명로의 최근의 작업태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이미지와 개념이라는 구회에서 그것을 구분할 수 없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원형감각’을 강하게 불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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