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UKA YAMAMOTO

마유카 야마모토

 마유카 야마모토의 회화 -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아름답고 우울한 유년의 컬러


   유년시절 읽었던 <고흐의 일생> 중 잘린 귀에서 나는 미라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냄새에 매료된 이후 반 고흐처럼 37살까지만 살고 자살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작가, 아이를 낳고 키울 때 자신이 포유류가 되는 것을 경험했다는 작가 마유카 야마모토. 그녀는 나라 요시토모, 무라카미 다카시로 대변되는 재팬팝 1세대를 잇는 2세대 선두작가 중 한 사람이다.

굳이 이러한 전기적 사실을 언급하는 것으로 서두를 시작하는 것은 다분히 흥미를 유도하기 위한 구실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평범한 듯 비범해 보이는 작가의 그림을 이해하게 해주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그림에 입문하는 어떤 의식 내지는 주문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주지하다시피 작가는 파스텔 톤의 부드럽고 우호적인 느낌의 화면에 그려진 동물분장을 한 소년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년은 누구이며, 그는 왜 동물분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작가의 전언은 그 소년이 자신의 아이를 모델로 한 것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이 단순히 부드럽고 우호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먼 것일 수도 있음을, 나아가 그 느낌은 다만 표면적인 느낌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표면에는 드러나 보이지 않는 보다 심층적인 의미라도 있다는 것일까.


작가는 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 자신의 유년시절을, 특히 자신과 어머니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이렇다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유년기의 상처나 원초적인 공포 같은 것을 더듬어 찾아내 그것을 그리기 시작했다(그런데 작가의 이 경험은 너무나 깊이 각인돼 있어서 스스로는 결코 인식할 수 없는 프로이드의 트라우마를, 그 이유를 알 수도 치유할 수도 없는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을, 그 원초적이고 존재론적인 상처를 닮아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이후에는 자신의 아이를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시도해보았지만, 곧 그것은 (아마도 아이에게) 폭력행위인 듯 느껴져 그만두었다고 한다. 

사태가 이쯤 되면 문제가 좀 더 선명해진다. 그림 속 소년은 자신의 아이이면서, 이와 동시에 작가 자신의 유년의 자화상이기도하다.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를 기록해나간 일종의 육아일기와, 이를 계기로 되새겨 본 작가자신의 성장서사를 날실과 씨실삼아 직조해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 속 소년은 작가의 아이이면서, 유년시절 작가 자신의 초상이기도 하고, 어슷비슷한 유년기를 보낸 우리 모두의 잃어버린 자화상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작가의 그림은 육아일기의 형식을 취한 것이란 점에서 개인적이며, 아이의 눈을 통해 본 잃어버린, 상실한, 돌이킬 수 없는 성장서사를 기록한 것이란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때로 작가의 그림에서의 의미가 애매하거나, 특히 몽롱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는 바로 이 때문이다. 즉 모든 잃어버린 것들, 상실한 것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은 다만 상징과 암시를 통해서만 표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작가의 그림에 입문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아이의 눈(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 물음은 도대체 나의 유년시절에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또한 그 일(그 사건, 그 상처)은 어떻게 무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라는 물음과 동격이다. 즉 스스로를 유년시절로 소급시킨다는 것은 곧 무의식을 탐색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유년시절과 그림에서의 우호적이면서도 몽롱한 분위기가, 동물분장과 무의식이 하나로 만나진다.   부드럽고 우호적이고 애매하고 몽롱한 그림의 분위기는 다름 아닌 베일이다. 기억을 더듬어 유년시절로 회귀시켜주는, 심연과도 같은 무의식으로 인도해주는, 아득한 원형과 맞닥트리게 해주는 관문에 드리워진 장막인 것이다. 그 장막을 걷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 물을 만난다. 물은 말할 것도 없이 삶의, 심연의, 무의식의 상징이다. 소년은 물이 가득한 푸른 튜브 속에서 아직은 낯 설은, 미처 도래하지 않은 세계를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내다본다. 여기서 물이 가득한 튜브는 자궁을 상징하며, 그 안온한 기분에 감싸인 소년은 아직은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지가 않다.


   그런가하면 다른 그림에서 소년은 발이 물에 잠긴 채 무슨 죽은 동물마냥 붉은 곰 인형을 양손에 들고 서 있다. 여기서 죽은 곰 인형은 소년의 분신이다. 어린아이들은 곧잘 자신을 동물이나 인형과 동일시한다(이미지와 실제, 자신과 타자와의 동일시현상). 그에게 동물이나 인형은 단순한 동물이나 인형이 아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몰래 어른을 흉보고, 심지어는 어른들에 대한 살해를 공모하기도 하는 동료며 친구다. 

그렇게 나의 그림자와도 같은 분신이 죽었다. 그림자가 죽고, 분신이 죽고, 에고가 죽고, 내가 죽었다. 나는 죽고 싶지가 않은데 어른들이 나를 죽인 것이다. 다름 아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며 거세불안이다. 그 거세불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상징과 기호와 언어와 도덕과 윤리와 법률(진즉에 죽고 없는, 다만 허명으로만 남은 아버지의 이름들)이 지배하는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선 지금껏 무질서 속에서 자족하던 나를 죽여야만 한다. 그렇게 소년은 자신의 에고가 죽는 것을 몸소 겪으면서 점차 어른으로 성장하고 성숙해 갈 것이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진정 나에게 속한 것, 해서 진정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 이를테면 에고, 욕망, 자연성, 본성, 야성을 상실하고서만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불완전한 것이 아닌가.


   거세불안은 머리에 사슴의 뿔이 달린, 몸의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긴 채 등을 보이며 서 있는 소년그림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의식은 어른이 되기를 강요하는데(머리에 돋아난 뿔), 아직 물에 잠겨 있는 무의식(몸)은 미처 어른이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찬란한 관을 물리고 싶다. 이처럼 작가의 그림에서 동물인형은 소년의(작가 자신 혹은 우리 모두의) 분신으로 나타나고, 어른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로서의 거세불안은 죽은 인형이나 사슴의 뿔로서 현상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현장인 무의식은 물로써 상징되며, 이는 다른 그림들에서 푸른 밤이나 어둑한 숲으로 변주된다. 너무 푸른 밤이면 소년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의 무의식이 깨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소년은 무의식적으로 동물이며, 그가 속한 시간대는 밤이며, 그가 거주하는 집은 숲이다. 해서,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숲으로 돌아가고 싶고, 어둠 속에 숨고 싶다. 비록 어른이 되기 위해 거세불안이라는 통과의례를 감수했지만, 그렇다고 이렇듯 상실된 욕망은 어른이 된 이후에조차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어른이 된 이후에도 내가 상실한 것들을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불행할 것이다. 나아가 그것들은 언젠가 내가 약해졌을 때 나를 무너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억압된 것들의 귀환).


   마유카 야마모토의 그림을 읽는 내내 이상하게 무라카미 류의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책이 머리에서 맴도는 것을 느낀다. 하나같이 성장서사에 바탕을 둔 탓일까(엄밀하게 야마모토의 그림은 유년을 소재로 한 것인 만큼 본격적인 성장서사로 보기는 좀 그렇지만). 류의 소설 제목은 결코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성장통을 블루라는 한없이 투명한(순수한) 색채에 빗댄 반어법적 표현이다. 모든 투명한 색채(그리고 그 색채가 환기시켜주는 일체의 순수한 것들)는 오히려 어둠에 속해 있고, 우울한 감상에 잠기게 하며, 죽음을 환기시킨다. 작가의 그림은 부드럽고 우호적이고 몽환적이고 촉각적인 표면을 찢고 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무의식 혹은 심연의 색채인) 속으로 뛰어들고 싶게 한다.


고 충 환 / 미술평론


PAINTING OF MAYUKAYAMAMOTO 

ALMOST TRANSPARENT BLUE, A COLOR OF BEAUTIFUL AND GLOOMY CHILDHOOD


Mayuka Yamamoto - an artist who thought that it would be fine to live for just 37 years as Vincent van Gogh did after being attracted by the smell of the cut ear that calls to mind that of a mummy in <The Life of Vincent van Gogh> when she read in her young age, and who said that she experienced of becoming a mammal while giving a birth to a baby and taking care of it. She is one of the two representative artists of the first generation of Japan Pop led by Nara Yoshitomo and Murakami Takashi.


She is well known for the picture of a boy who put on a makeup like an animal in a smooth, favorable, pastel-like atmosphere. Who, though, is the boy appearing in the picture and why did he put on a makeup like an animal? Her statement explains that she took her own son as the model for the boy. She implied that her painting seemed to be far from a merely smooth and favorable atmosphere, and that the feeling might be superficial. If so, is there any deeper meaning that is not shown on the surface in it?


The boy within the painting is not only her son, but also the self-portrait of her childhood. She created her own record of development based on a sort of childcare journal she wrote as the boy grew. In fact, the painting is personal in that it adopts a form of child-care journal, and acquires universality in that it is a record of development that was lost and can never come back in the eyes of the boy. This is why sometimes her works seem vague in terms of meaning and make dreamy feelings. In other words, in her works, all lost things or things that can never come back are embodied only with symbols and implications.


Therefore, the important thing is, all of us should have the eye(heart) of a child to learn her paintings. What on earth happened to the child? The question was aroused within my mind while I was still young, and is the same with the question, how was it(the accident, the wound) deep-seated within subconsciousness? Tracing back to one's childhood means to look for subconsciousness.


While appreciating the works of Mayuka Yamamoto, I could not get off from my mind the book called <Almost Transparent Blue>, written by Ryu Murakami, maybe because they were all based on description of deeds in a growth period(more specifically, works of Yamamoto are about infancy, and thus actually somewhat different from a growth story). The title of Rye's novel is an expression of irony to describe the growth history that is not that beautiful with an almost transparent(pure) color. Every transparent color(and a series of pure things that such color highlight) rather belongs to darkness, makes people in a gloomy mood and calls to mind death. Works of Mayuka Yamamoto make me feel the urge to rip apart the smooth, favorable, dreamy, and sensitive surface and jump into the almost transparent blue(a color of subconsciousness or a deep swamp).


Kho, Chung-Hwan / Art Critic


Address

30, Hoenamu-ro 44ga-gil, Yongsan-gu, Seoul, 04346, Korea
서울특별시 용산구 회나무로 44가길 30 (우)04346


Phone (+82-2)546-3560 / Fax  (+82-2)546-3556

Mail gallerysp@daum.net / gallerysp01@gmail.com



Gallery Hours 

Tuesday to Saturday - 10:00am - 6:00pm

Sunday -  Appointment Only 

Closed on Monday

New Year's day, Thanksgiving day


Director 이은숙 / LEE, EUN S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