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BONG TAE

김봉태


'古談'과 '幽玄'의 운치 - 김봉태의 <비시원>에 대하여 - 서성록 / 미술평론가


김봉태의 작업출발은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앵포르멜의 거센 물결이 우리 화단을 크게 흔들어 놓던 무렵, 이 미술의 주도적인 그룹의 하나였던 '60미협'에 가담하여 현대미술의 촉진에 한동안 이바지하다가 '60년대 초 도미하여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근 30여년간 꾸준히 활동해왔다. 작품경향에서 종전과 큰 차이를 보인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변화가 있다면 이전보다 좀더 단순 명쾌한 기하학적 구성이 현저해졌다는 점이며, 또 다른 변화의 하나는 반평생이라는 긴 세월을 꼬박 외지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의 얼과 맛을 잘 드러내는 쪽으 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 작가들이 서구화 되어 가는 것과 퍽 대조를 이루지만, 그 의 작품세계 바탕에 뿌리의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실증하는 징표에 다름 아니다. 그의 작품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의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필자는 칸딘스키의 다음과 같 은 말을 환기해 봄으로써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형식은 내적인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식을 우상으로 섬겨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는 형식이 단순히 내적 반향의 수단으로 한정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중략) 형식(물질적 실체)은 일반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 즉 정신이다. (중략) 우리는 절대적인 것이 형식(유물론) 속에 투영되지 못함을 직시하고 있는 터이 다."
여기서 칸딘스키는 플라톤에서 피들러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형식을 의미해온 정신적인 것 을 내용으로 삼고, 예술작품 속에서 시각적 개념의 회화적 실현으로 간주할 수 있는 형식을 '물질적 실체'로서 규정하고 있다. 불변의 어떤 내용을 가장 자유롭고 짜임새 있는 형식을 통해 실재화 시키려 했던 칸딘스키의 생각을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형식과 내용을 완벽하게 일치시키려는 바램은 칸딘스키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예술가들이 골치를 썩혀온 문제이기도 하다. 김봉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주제와 형식을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는 중인 것 같다. 이때 주제와 형식의 관계란 물론 어떤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의 문제로 요약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김봉태의 작품을 바라보면, 커다란 원형, 타원형을 중심으로 하여 이를 에워싸는 여러 가지 세부 형태와 그 위에 가해진 다양한 색채로 구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여러 요소들도 구성되지만 주된 모티프를 이루는 것은 서로 다른 비정형의 이미지들이다. 그 형태란 사람에 따라서는 순수 기하학으로 볼 수 있으며, 색동의 팔랑개비일 수도 있으며, 색동저고리, 아니면 단청문양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온갖 구구한 해석을 낳을 수 있지만,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태극도형의 원형을 불리는 팔괘를 변형시킨 것이며, 따라서 하늘, 땅, 사람을 상보적 관계를 중시하는 '한사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고 한다.
어떤 작품과 마주했을 때, 그러나 작품이 특별한 또는 분명한 취지를 담고 있을 때, 필자 는 주로 작가의 화론이나 세계관에 많이 의존한다. 그렇게 하면 좀더 분명하게 그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그만큼 대상 작품에 대한 주관적 판단, 해석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한복판에 도사리고 있는 팔괘에 대한 좀더 부언설명을 곁들이기로 하자. 복희 황제가 처음 발견한 팔괘란 하나의 원형 속에 여덟 개의 괘를 배열하는 방법을 말하 는데 음과 양을 비례대로 여덟 개를 만들어 그 강도에 따라서 네 개씩 반대로 회전하도록 배열함으로써 '일'의 태극에서 '다'의 만물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도형화했다고 한다. 김봉태의 원형, 타원형 속에 자리잡은 모양이 팔괘라는 사실은, 그의 작품이 우리의 정신적 전통을 이루어온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더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자면 쇄도해 들어오는 서구사상 속에서 우리의 정신적 전통을 잊지 않으려는 굳은 의지를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의 오랜 기간의 외국 체류 속에서 축적된 회귀심리가 그것을 가능 케 해주지 않았나 짐작했다.

그의 팔괘는 비록 그것이 문양화 되어 단순한 소재로 해석될 소지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나, 시작과 끝의 연속성, 다시 말해 어느 한쪽에도 근원을 찾을 수 없도록 완전히 연관되어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그 속에는 이쪽에서 저쪽, 혹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어느 한쪽에 근원을 두기보다는 서로 의존하여 어디에도 시원을 두지 않는 관점을 담고 있다. 이를 작가는 '비시원적'이라고 부르며,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전통사상은 우리의 혈맥 속에 깊이 들어와 '마이다스의 손(Midas touch)'처럼 거의 예외 없이 이러한 특징을 지녀왔던 터이다. 팔괘에 깃든 시작도 끝도 없음, 앞과 뒤도 없음이 조화를 가리키듯, 그의 작품도 조화의 이치를 담아내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합리성의 상징으로 태어난 '기하학'의 그의 작품에서 '합리성 너머의 것'으로 전환되고 있음은 지극히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그의 이러한 발상이 한낱 구호로만 나타나 정신적 신분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용을 자신의 고유 어법으로 형상화하는 방법은 다음의 사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화면은 요철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면과 바탕의 구분이 별로 없다. 표면은 바탕이 되고 또 그 반대의 상황도 허용한다.

여기에 덧붙여 지적할 수 있은 것이 방향성 이다. 그의 작품은 전후좌우가 따로 없다. 어느 방향에서 보든 팔괘는 여전히 팔괘이며 이는 그가 세상질서라는 것을 고정된 위상에서가 아니라 가변적 시각에 따라 보려는 의미를 내포 한다. 이처럼 안과 밖의 동일함과 무방향성은 앞서 말한 바처럼 그의 작품이 조화개념, 그가 어느 잡지에서 적절하게 표현한 것처럼 '앞 뒤 없는 이중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얼핏 그의 작품을 관찰하면, 여지없는 기하학적 추상으로 볼 소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명료한 기하학, 날렵하게 달리는 線條(선조), 릴리프 처리된 공간, 원색의 투명성 등을 대하면 십중팔구 그런 판단을 굳히게 해줄 것이다. 미가 수 또는 기하학과 관련해 왔다는 증거를 멀리 희랍과 중세에까지 소급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미의 최고 형태'는 "질서(Order)와 시메트리(Symmetry), 그리고 규정성(Definiteness)으로 이것들은 특별한 수준에 있는 수학에서 나타난다."고 적은 바 있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5세기경에, "아름다운 사물 들은 다른 사물들에 상응하는 균등의 수를 갖춘 비례에 의해 만족된다."고 했다.
하지만 김봉태의 작품에 수 또는 기하학의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목판화에서 볼 수 있듯이 둥근 맛의 부드러움이 있으며 색깔의 은은한 향취를 맛볼 수도 있으며 고담(古談)하고 유현(幽玄)한 운치를 맛볼 수 있다. 목판에 투박한 글씨체로 새긴 한글이나 그것이 간직하는 옛스러움의 향기는 그의 작품이 지닌 양식의 문제와는 별개의 차원에서 한번쯤 생 각해 볼 문제이다. 그의 작품은 무엇으로 부르든 그것은 필자의 관심 밖의 문제이다. 그가 작품을 통해 제기 하는 기본적 문제에 필자의 관심이 있는데, 그것은 東과 西가 훌륭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을 그가 보여주고 있다는 데 있다.
말하자면 우리의 정신적 뿌리를 확인시키면서 그것을 다 시금 오늘의 미감에 맞게 변용시키는 데서 그의 진가가 한층 빛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그것은 최재층이 『민족의 뿌리』이라는 저술에서 " '한'은 비시원적이며 (중략) 모가 없 는 둥글움"이라 묘사한 바처럼, 모든 것을 자신 속에서 용해시켜 자기의 것이 되게 하는 중 관론(Middle way)을 그의 작품의 중심축으로 놓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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