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BYOUNG WOOK

오병욱

 수평의 바다. 바다를 본다. 텅 빈 바다는 가물가물한 수평선만을 던져줄 뿐 우리의 눈을 잠시 공허에 빠뜨린다. 바다는 헤아릴 수 없다는데 그 매력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실측과 시측의 경계에서 훌쩍 벗어나 있다. 시작과 끝을 한 눈에 보여주지 않기에 인간은 다만 그 한 자락만을 단서로 삼아 무한함을 체득한다. 광막함은 그래서 일종의 공포를 동반한다. 그 무서움은 측정할 수 없는 두려움, 깊이와 한계가 없는 데서 만나는 숭고함에서 기인한다. 근원을 알 수 없다는 곤혹감이 막아서는 바다는 일종의 원풍경이고 가장 본능적이고 본질적인 장면일 것이다. 가슴속에 오래 살아남아 추억이 되는 이미지들은 이렇게 본원적인 힘들을 지닌 것들이다. 사람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이를 하나의 이미지로 담아두는 본질적인 이유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알 수 없는 힘을 지녔기에 그럴 것이다. 거기에는 사실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무(無)를 바라다보는 것은 결국 자신의 내면으로 회귀해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다에 도착한다. 세속의 끝자리에, 삶의 마지막 경계에 바다는 처연하게 드러누워 있다. 떠나온 자들은 무엇보다도 바다를 본다. 어디에선가 떠나온 자신의 절대적인 존재를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기에 그럴 것이다. 나는 오병욱이 그린, 재현한 바다를 본다. 특정 장소의 바다를 구체적으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바다라는 이미지, 상을 순수하게 떠올려준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한눈에 섬광처럼 파고들고 순간적으로 깨닫게 하는 바다/물의 이미지다. 찰나적인 보여짐에 따라 이내 바다가 보여지고 바다 앞에 서 있는 느낌을 준다. 그 체험은 마치 육지를 내달려 온 시선에 바다풍경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의 그 감격과 유사하다. 우리들 모두는 짧은 탄성을 신음처럼 터트린다. 아! 바다. 


모든 이미지, 풍경은 결국 우리가 보았던 기억에 의존해 보여진다. 이 때문에 그의 바다는 여전히 바다라는 드라마에서 자유롭지는 못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새삼스럽게 바다를 다시 한 번 우리 눈앞에 절실하고 아름답게 인식시켜 준다. 그것은 익숙하게 보아온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서 떨어진 느닷없이 마주하게 되는 바다의 초상이다. 늘 익숙한 풍경을 거짓없이 보여주는 재현적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그림은 매번 당혹감과 생경함으로 익숙함을 배반하는 힘을 지녔다. 결국 그것이 좋은 이미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병욱은 가로로 길게 이루어진 캔버스 화면에 물감을 무수히 뿌려 올린 자국으로 바다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3분의 2, 혹은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자리에 사라지는 수평선을 중심으로 바다는 형성된다. 자잘한 점들이 부딪치고 흐르고 엉긴 자취들, 요철을 이루는 물감의 덩어리들이 얹혀진 하단이 어느덧 하늘이 되고 바다가 되었다. 붓의 방향과 각도를 달리하면서, 물의 농도를 조율하면서 뿌려지고 그렇게 섬세하게 밀착되어 올려진 입자, 점들이 모여 이룬 이 바다는 빛과 더불어 항상 변모하는 질료로 존재한다. 빛에 의해 응고되어져, 광물질의 표면처럼 빛나기도 하고, 증발의 방향으로 나아가 흐린 대기처럼 엷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실체를 규정할 수 없는 끊임없는 변모가 물의 실체인 것처럼 바다는 색을, 밀도를 수시로 바꾸고 있다. 오병욱은 이렇게 바다를 쉼 없이 변화 생성하는 존재로 부각시켰다. 어두움이나 흐릿한 안개를 뚫고, 미분화된 세계의 빛에 의해 비로소 하늘과 분리된 바다는 단단한 질료와 희박한 질료를 끝없이 오간다. 그 피부 위로 인간의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색들이 시시각각 발산한다.


그는 수평으로 길게 드러누운 바다를 닮고자 한 것은 아닐까? 물이 보여주는 수평에의 의지, 편안한 휴식은 모든 수직적, 남근적 욕망을 누그려 뜨린다. 갈등과 욕망을 잠재우고 마치 하루의 고단한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로 들어가 편안한 휴식을 취하듯이, 누구나 수평으로 죽듯이 그의 바다 그림 역시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수평으로 가라앉힌다. 그것은 더없이 아름답고 평화롭고 아득하다. 생선의 비늘처럼 싱싱하게 퍼득거리는 바다, 날것으로서의 물 자체가 손에 감촉될 것 같다. 이 바다이미지는 감각의 사치를 마음껏 향유하게 해준다. 나는 그걸 기꺼이 즐긴다. 그 정도의 사치는 허용될 것이다. 동시대 현대미술이 피곤한 난해함, 지적 게임의 참여, 다소 강박적인 새로움의 창조, 좀더 충격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데 열중한다면 오병욱은 역으로 보는 이들에게 편안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이미지를 서비스하기로 작정했다. 그의 그림은 바다를 보듯 보면 된다. 그러니까 그의 그림 앞에서 실제 바다풍경을 상상하거나 몽상에 하염없이 빠져들면 되는 것이다. 


햇살, 조명에 따라 쉴새없이 뒤척이는 바다의 표면은 현란하다. 경계가 희박한 수평선과 대기의 맞닿은 지점은 아득한 원근을 부여하며 시선을 한정없이 잡아끈다. 납작한 평면에 절대적인 깊이가 홀연히 위치한다. 보는 이의 시선은 그 깊이로 스며든다. 그림 앞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관점의 이동과 시간에 따라 수시로 변화를 동반하는 바다는 몸에 반응한다. 그의 그림은 몸의 하릴없는, 다소의 게으른 소요를 요구한다. 화면은 몸의 총체적인 반응, 통감각적인 관여의 재촉을 요구한다. 화면마다 다른 전체적인 색조는 환상적이고 아름답다. 시간에 따른 바다의 반응과 변화가 색으로 치환되었는데 이 아름다운 색 자체로서의 바다가 위안을 준다. 내 눈이 거기서 적셔지고 비로소 세상에서 놓여나 자유로이, 어떠한 목적지나 고정 없이 떠돎을 허용한다. 그 자유와 권태가 좋다. 오로지 뒤척이는 바다, 물만이 흔들린다. 호화스런 물 비늘을 만드는 태양 광이 반짝인다. 어떠한 대상도 지운 채 오로지, 오로지 바다의 피부, 살만이 거기 그렇게 존재한다. 그 바다는 넓고 깊고 아득해 보인다. 프레임을 치고 들어와 슬쩍 수평으로 구획된 이 바다는 오로지 선들로 가시화 되는데, 그 선에 의지해 바다는 비로소 우리들의 시선에 파고 들어와 적셔진다. 그것은 일종의 기하학이자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시선이다. 한 개인의 섬세한 신경줄과 섬약할 정도의 민감한 정신의 지진계로 포착한 이 바다의 풍경은 전적으로 빛과 색에 의지해 드러난다. 빛은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다. 작가의 관심은 재현 대상이 아니라 빛 자체이며, 그 상황의 체험을 통해 자기 자신을 규명하고 극복해보고자 하는 것 같다. 이미지의 어원에는 빛이란 단어가 숨겨져 있다. 빛이 없다면 우리는 볼 수 없고 이미지 역시 없다. 그러니까 모든 이미지는 빛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 빛을 심리적인 차원으로까지 끌고 가 그림을 우수와 낭만, 감성적인 차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새삼 우리 눈앞에, 몸 앞에 광막하게 펼쳐진 바다를 불러 눕힌다. 그리고 침묵과 고요함으로 가라앉는 수평에의 의지를 권하고 있다.


박영택 / 미술비평 / 2004 오병욱 회화전 - 스타타워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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