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Pages


2022.10.6(Thu) - 11.3(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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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수지(큐레이터, 갤러리SP)



  갤러리 에스피는 그룹전 <Random Pages>를 통해 유망한 청년 작가 4인(곽지유, 박다솜, 박지혜, 슈니따)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가 훗날 무작위로 펼쳐본 일기장의 한 페이지처럼 치열하고도 충만했던 젊은 예술가의 평범한 하루를 둘러보는 경험이 되길 바란다.


  곽지유의 작품은 완결된 ‘그림’이 아닌 진행형의 ‘드로잉(Drawing)’임을 명시한다. 중간과정에 놓여있는 모든 존재는 불안정, 불완전, 미성숙과 같은 연약한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동시에 가늠할 수 없는 가능성을 지니면서 완결 그 이상의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현재까지 생활하고 있는 곽지유는 낯선 곳에서 사소한 주변의 것들에 새삼스레 집중하는 경험을 하는데, 그럴수록 감각 자체에 의지한 과감한 선과 면을 만들어내게 된다. 곽지유는 계산적인 태도를 과감히 내려놓고 자연적인 감각을 따르는 만큼 결합과 단절, 지속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 질서와 무질서 등의 양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작품의 방향성이 흩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한다. 곽지유는 그림을 그리면서 본인과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이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자 해답이 되기도 한다.             


  박다솜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변형의 끝에서 죽음이라는 극단적 결말을 떠올린다. 너무나도 피하고 싶어 더 집요하게, 순식간에 도달해버린 죽음이라는 공포를 해소하기 위한 방식으로 ‘꿈의 방법론’을 택했다. 현실에서의 마땅한 인과관계나 시간의 흐름 따위는 전혀 통하지 않는, 꿈속에서만 허용되는 ‘제멋대로의 룰’은 상실을 차단하는 도피처임을 넘어서 즐거운 자유의 공간이 된다. 이처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극단의 공포를 손쉽게 지워내고 그 자리를 즐거움으로 채울 수 있는 무모함이 꿈속에선 가능한 이유는 ‘망각’이라는 전제 덕분이다. 박다솜의 이야기는 바로 이 ‘망각’에서 출발한다. ‘망각한 도시 풍경’ 작업으로 시작해 최근에는 인간의 ‘몸’으로 대상을 구체화했는데, 인체의 본래 모습과 기능은 잊은 채 인체를 마음껏 해체한다. 작품에서 어렴풋하게 보이는 인체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추측을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여지일 뿐, 내용을 파악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작가는 더 파괴하고 세우고 다시 무너뜨리는 것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몸’이라는 개념은 점차 확장된다.


  박지혜는 일상적인 삶의 경험을 작품에 담아낸다. 동네를 산책하다 우연히 발견한 나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 작품의 소재로 삼기도 하고, 실제 키우는 고양이와 애정하는 전기장판을 화면 안에 등장시키는가 하면, 심지어 작품에 대해 고뇌하는 자신의 모습 자체를 주제로 그리기도 한다. 박지혜는 여타 작가들이 행하는 감추어 드러내거나 의미를 함축하는 방법 대신 화면 가득 본인의 세상을 성실하게 채워 넣는다. 이는 마치 ‘치트키를 쓰지 않는 방식의 치트키’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박지혜의 작품이 평범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가 주로 사용하는 강렬한 색채와 패턴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요소는 일상적 경험이라는 작품의 내용과는 상반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그림 속의 세계임을 강조하며 현실에서 한 발자국 벗어난 자아와 타자의 모습을 바라보려는 의도이다.


  슈니따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을 ‘무명(無名)’이라는 상징적인 존재와 함께 이야기한다. ‘무명(無名)’은 다양한 색깔로 작품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띠고 있는 색 자체가 특정 감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한 임의의 색일 뿐이다. ‘무명(無名)’은 이름도 색깔도 존재하지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며 감정을 매개하는 동반자 내지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각 작품이 담고 있는 장면의 내용은 생각보다 디테일한데, 이는 감정 자체를 담는다기보단 우연히 발생해버린 어떠한 감정을 내면에서 다루는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뤄야 하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 감정이 밝고 긍정적인 감정보단 불안정하고 위로받아 마땅한 감정 쪽에 치우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명(無名)’이 감정의 때를 밀어주고, 등긁개로 부스럼을 털어내는 이번 신작 역시 감정을 다뤄야만 하는 인간에게 위로와 도움이 되는 조력자로서의 모습이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