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 THERE

KIM TAEHYUK


2022. 8. 25 - 10. 1



그림은 어디에서 성립되는가 - 김태혁의 탐구

 

植草 学 우에쿠사 가쿠 (미술 저널리스트)

 

오늘은 2022년 8월 25일이다. 이날 시작된 김태혁의 개인전을 나는 그가 인스타그램(Instagram)에 올린 사진을 통해 보았다. 그리고 지금 일본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첫눈에 전시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김태혁의 작품에 대한 내 느낌이 과연 옳은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회화 작가인 김태혁은 일본에서 판화를 배운 경력도 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광주 등지에서 발흥한 민중미술 운동이 진행되는 가운데 판화의 수작이, 특히 흑색만을 이용한 단색 목판화가 많이 생겨났다는 사실은 일본에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태혁은 당시 일본에서 다색 목판화가 많았던 것에 흥미를 느껴 유학했다고 2001년 나와의 인터뷰(interview)에서 대답해 준 적이 있다.

반면 한국에는 뛰어난 추상화를 낳아온 역사도 있다. 김환기는 물론 특히 1970년대부터 융성한 단색화 작가들도 일본에 잘 알려져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김태혁의 개인전을 보고 내가 느낀 점은 그도 그러한 판화사와 회화사에서 선인들이 해온 사고와 탐구를 이어받아 더욱 심화시키려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김태혁은 최근 그림이라는 표현의 구조를 해부하고 있다. 적어도 근 10년간의 작품은 그러해 보인다. 예를 들어 가로와 세로줄을 엮는 네트워크(network) 작품은 직조된 캔버스(canvas)를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는 듯하다. 그림은 캔버스와 물감으로 이루어진다. 김태혁은 캔버스와 물감 사이를 마치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고 싶다는 듯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 '무엇인가'란 아마도 '회화가 회화인 근거' 혹은 '예술이 예술인 이유'임에 틀림없다. 네트워크 작품뿐만 아니라 캔버스와 물감을 분리해 그림의 구조를 해부하는듯한 근작이 이번 전시에 적지 않다는 점에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림은 어디에서 성립되는가? 캔버스인가 물감인가, 아니면 둘 사이인가. 김태혁은 판화의 원리와 개념을 통해 수술용 매스(surgical scalpel)로 해부하듯 그림의 구조를 파고든다. 판화 역시 종이와 물감으로 이루어지지만 둘 사이에는 판이라는 보이지 않는 원리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회화의 경우에도 캔버스와 물감 사이에는 ‘무언가’가 존재하는데, 그곳이야말로 회화라는 예술의 근거가 잠재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사고를 제작에 옮김으로써 선조들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작품이 김태혁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는 분명 그 자신도 기대한 바일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작품으로 옮기려니 어렵다. 현대미술의 첨단을 향하는 탐구로선 뛰어나지만 이른바 '보는 이의 눈을 소박하고 즐겁게 하는' 형태나 색깔로는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김태혁의 작품은 아름답다. 따라서 현대미술의 첨단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길도 끌 수 있으며 다양한 각도로 감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김태혁의 어느 설치(installation) 작품을 보고 보자기와 닮았다고 느낀 나의 감상은 틀리지 않은 감상이 될 것이다. 또 어떤 그림은 단색화의 역사와 관련된 수작으로 감상되어도 좋을 것이고, 유럽적인 모더니즘(modernism)의 조형이나 아시아적 색채가 절묘하게 결합된 작례라고 보는 사람이 있어도 좋을 것이다. 이렇듯 김태혁의 작품은 그가 ‘회화는 어디에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탐구를 깊이 하면 할수록 감상의 자유도 넓어지는 매력이 있다.

 


Where Do Paintings Come Into Being? — An Inquiry by Kim Taehyuk

Uekusa Gaku(Art Journalist)


Today is August 25th, 2022. I experienced Kim Taehyuk’s solo show, which opened on this day, via the photos he posted on Instagram. I am writing this in Japan. From the very first image I saw, I wished I could be there in person. I would like to see for myself, with my own eyes, whether the sense I’ve developed about Kim Taehyuk’s work is actually correct.


A painter now, Kim Taehyuk is known to have studied printmaking in Japan. The proliferation of Korean print masterpieces in this period is well known in Japan— particularly in terms of the monochromatic woodblock prints in black that accompanied the emergence of the populist minjung art movement in Gwangju and its environs in the 1980s. Notably, however, in an interview with me in 2001, Kim once mentioned choosing to study abroad in Japan precisely because he was drawn to the multicolored woodblock prints that were popular there at the time.


Needless to say, Korea also has a history of producing excellent abstract paintings. A number of dansaekhwa artists from the 1970s — including, of course, Whanki Kim — are quite well known in Japan. What I felt, seeing Kim Taehyuk’s solo show on instagram, was that he, too, is an artist who seeks to carry on and deepen the considerations and explorations of those who have come before him in his native printmaking and painting traditions.


Recently, Kim has taken to dissecting the very structure of that expressive form we call painting. Or so it appears, at least, when we consider the work he has produced over the past decade. His “Network” pieces, for example, weave horizontal and vertical lines together in a way that seems to magnify the original woven texture of the canvas under a microscope. A painting consists of canvas and paint. Here, it is as if Kim is reaching for something beyond the scope of the naked eye; he wants to magnify the liminal, to see what lies between canvas and paint.


What Kim seeks in this in-between is “that which makes a painting a painting,” or “the reason that art is art” — of this we can be certain. This certainty comes from the fact that so many of Kim’s recent works, even beyond his “Network” series, separate canvas and paint as if dissecting the structure of the painting itself


Where does a painting come into being? Is it in the canvas, the paint, or somewhere in between? Deploying the principles and concepts of printmaking with which he is so familiar, Kim Taehyuk effectively takes a surgical scalpel to his paintings, digging into their structure. Prints, too, are made up of paper and paint — but interposed between them is the invisible principle of the plate. This same principle applies to paintings: between canvas and paint exists something, and it is, perhaps, in that very thing that the true basis for the art from we call “painting” can be found. And as Kim infuses this thought process into his process of production, paintings that escaped the notice of his predecessors have begun revealing themselves to him. Indeed, Kim himself has no doubt been seeking this phenomenon.


Transferring this kind of thinking to actual production is a difficult undertaking. Even when an exploration that reaches for the cutting edge of contemporary art is excellent in itself, the products — form and color that offers a “modest embrace of the beholding eye”— can regularly fails to bear fruit. Happily, Kim Taehyuk’s paintings are still beautiful. And, as such, they also attract the attention of those unfamiliar with the latest frontiers of contemporary art, realizing the promise of appreciation from many different angles.


For example, Kim Taehyuk will surely forgive even a viewer like me, who felt that a certain installation resembled nothing so much as a cloth wrap. It would also be nice for someone to encounter a piece by Kim as a continuation of the legacy of dansaekhwa, while another considers the very same work to be an exquisite combination of European modernism and Asian color. Indeed, this, perhaps, is the most compelling aspect of Kim Taehyuk’s work: the deeper Kim delves into this central question of “where the painting comes into being,” the broader the scope of our possible modes of appreciation.



絵画はどこに成り立つのか ― 金 兌赫の探究


植草 学(美術ジャーナリスト)


今日は2022年8月25日だ。この日に始まった金兌赫の個展を私は、インスタグラム(Instagram)に彼が掲載した画像で見た。そして、この文章を日本で書いている。一見して「会場に行きたい」と思った。金兌赫の作品について私が感じていることは、果たして正しいのかどうかを、この目で実際に確かめるために。

今は画家といってよい金兌赫は、版画を日本で学んだ経歴も持つ。韓国では1980年代、光州(광주)などで勃興した民衆美術運動の中で版画の秀作が、とりわけ黒色だけを用いた単色刷りの木版画が多く生まれたことは、日本でも知られる。それに対して日本では当時、多色刷りの木版画が多かったことに金兌赫は興味を覚え、留学した―と、彼は2001年に私とのインタヴュー(interview)で答えてくれたことがある。

一方で韓国には、優れた抽象画を生んできた歴史もある。金煥基(김환기)はもちろん、とりわけ1970年代から隆盛する単色画(단색화)の作家たちも、日本では知られる。インスタグラムで金兌赫の個展を見て私が感じたことは、そのような版画史や絵画史における先人たちの思考や探究を、彼も受け継ぎ、さらに深め続けようとしている1人だということだ。

金兌赫は近年、絵画という表現の構造を解剖している。少なくとも最近10年ほどの制作は、そのように見える。例えば縦と横の糸が織りなすネットワーク(network)の作品は、もともと織りものであるキャンヴァス(canvas)を顕微鏡で拡大して見るかのようだ。絵画はキャンヴァスと絵の具で成り立つ。金兌赫は、キャンヴァスと絵の具の間に、いわば顕微鏡で拡大して見たくなるような、肉眼では見えない「何か」を探ろうとしているように思われる。

その「何か」とは、おそらく「絵画が絵画である根拠」あるいは「芸術が芸術である理由」にちがいない。ネットワークの作品に限らず、キャンヴァスと絵の具を切り離し、絵画の構造を解剖するかのような近作が金兌赫には少なくないことから、私はそう考えている。

絵画はどこに成り立つのか。キャンヴァスか絵の具か、それとも両者の間か。金兌赫は、得意とする版画の原理や概念を解剖のメス(surgical scalpel)として、絵画の構造に切り込む。版画も紙と絵の具で成り立つが、両者の間には「版」という見えない原理が介在している。同様に絵画の場合でも、キャンヴァスと絵の具の間には「何か」が存在していて、そこにこそ絵画という芸術の根拠が潜むのではないか。そのような思考を制作に移すことで、先人たちも気づかなかった新しい絵画が金兌赫の眼前に姿を現す―と、きっと彼自身も期待しているのだ。

 そのような思考は、制作に移そうとすると難しい。現代美術の先端を行く探究としては優れていても、いわば「見る者の目を素朴に喜ばす」形や色には結実しない場合も多い。

だが、金兌赫の作品は美しい。したがって、現代美術の先端には必ずしも詳しくない者たちの目も引き、さまざまな角度で鑑賞される可能性を秘めている。例えば、あるインスタレーション(installation)はポジャギ(포자기)に似ている―と感じた私のような鑑賞者も、金兌赫は許してくれるだろう。また、ある絵画は単色画の歴史に連なる秀作として鑑賞されてもよいだろうし、ヨーロッパ的なモダニズム(modernism)の造形やアジア的な色彩が絶妙に結合した作例だと見る者がいてもよいだろう。金兌赫の作品はそのように、彼が「絵画はどこに成り立つのか」という探究を深めれば深めるほど、鑑賞の自由も広がるという魅力に富んでいるの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