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성

WHITE CASTLE

2022. 6. 23 - 7. 28


유령의 믿음

 

삶의 정수만을 쫓다가 이제야 주위를 본다. 모든 게 가능한 예술이 되었지만, 인간을 제쳐두고 싶지 않다. 해가 저물면 형광등 불빛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예술은 인간이고 인공인 것만 같다. 그림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화가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지금까지 나름으로 노력했지만 이런 결론에 이르니 우습기도 하다. 답이 될 순 없는 것이고 그저 그림의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느낀다. 이 역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되지만, 언어와 다르게 그림의 방식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많은 이들이 그 방식을 언어로 다시 설명해보려 하지만 부질없거나, 오해이거나, 오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그랬고 그렇다. 화가와 비평적 자아를 나누듯 훈련받았지만 그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제는 그것이 마치 게임처럼 미술계 안에서 플레이되지만, 재미가 없고 그림의 주변에 때론 켜켜이 쌓이기도 한다. 언어의 진입로와 그림의 진입로가 다르다는 것인데, 그림의 길 위에서 언어로 표식을 남기는 일은 차마 화가의 일이라 말할 수 없게 돼버렸다. 애초에 이 두 길이 다르고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걸 느낀다. 작업실을 나오면 다시 언어를 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림 앞에선 그림이 유일하다. 나는 또 밖에서 그림의 흔적과 이유를 사유한다. 언어는 그물이고 그림은 창이다. 뚫고 지나간다. 그림의 흔적을 좌표 삼아 안으로 들어가 보지만 손에 잡은 창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언어로 조형된 창을 들고 싶진 않다. 그림의 창이 남긴 작은 구멍 속을 들여다본다. 공허의 이름으로 기다리는 곳에선 언어의 유령이 의지의 이름으로 불을 밝힌다. 그 불빛을 따라가선 안 된다.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걸어야 한다. 공포를 미소로 화답하면서.


                                         2021년 8월 13일   -이재헌 작가노트




하얀 성

WHITE CASTLE


2022. 6. 23 - 7. 28


<인물/풍경을 품은 풍경/인물>


맹지영(전시기획자)


이재헌의 그림에서 소재는 언 듯 인물과 풍경으로 비교적 단순하게 구분되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작가 스스로 피력 했듯이 그는 붓질을 통해 실존하는 형상과 미지의 공간을 한 화면 속에 결합하고자 하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이번 전시 ≪하얀 성≫ 에서는 자화상을 포함해 얼굴에서 목이나 어깨 선까지 보이는 작은 크기의 인물들을 그린 <아이돌> 연작과 꽃과 풀이 있는 풍경과 풍경 속에 함께 존재하는 형상들의 <꽃밭 속의 형상> 연작, 그리고 2007년부터 시작한 <뷰어> 연작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총 15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4년 만의 개인전이다. 전시 제목 ‘하얀 성’*은 충청북도 제천 작가의 작업실 근처에 있는 모텔 이름이다. 유독 한국에서 ‘성(캐슬)’은 주거형태의 브랜드명이나 숙박업, 유흥업소에서 선호하는 작명으로, 이런 이름을 가졌다면 ‘성(캐슬)’과는 대조적인 외관과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얀’은 과거의 공간이 가져다 주는 환상과 모텔이라는 장소가 주는 복합적인 질감을 희석시키며 곧이어 무너지게 될 현실에서의 괴리와 공허를 잠시나마 유보 시킨다. 작가가 작업실을 오가며 본 하얀성 모텔은 대상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을 직설적으로 드러냈을 때 오히려 멀어지고 허무해지지만, 그것을 현실에서 인지해 가면서 대상 너머를 바라보도록 만들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음이 그의 그림과 중첩되어 보였는지도 모른다.

*하얀성 모텔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박스형태의 숙박시설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얀성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상징성은 하얀 벽을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고, 어두워진 후 밝게 빛나는 네온사인의 강조된 상호명으로 ‘하얀성’임이 더 강조되는 곳이다.


2015년 작가 본인을 포함한 주변 인물로부터 시작된 인물화는 2017년부터 본격적인 <아이돌> 연작으로 여러 변화의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작게는33.2 x 24 cm 에서 최대 100 x 73 cm 의 크기를 넘지 않는 이 연작은 본인이나 주변 인물로부터, 혹은 아이돌을 대상으로 그렸다고 하더라도 그 인물의 시작이 누구였는지는 추측이 거의 불가능하다. 아이돌은 그 의미처럼 과거에는 종교나 신화적 우상이었지만, 이제는 가수나 연예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재헌의 아이돌은 숭배와 추앙의 대상이 되는 인물을 선명하게 그린 것이 아닌 누군가가 전혀 연상되지 않는 아득하게 지워진 얼굴이다. 뿌옇게 지워져 있는 듯 보이는 그림 속 얼굴에게 작가는 또 다른 공간을 부여한다. 그 공간은 얼굴 안에서 화면의 전면부와 그보다 더 깊숙한 안쪽을 암시하는 환영을 만든다. 다른 표정과 시간이 여러 겹 중첩된 얼굴은 자세히 들여다보려 할수록 달아나거나, 반대로 시선을 화면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그에 반해, 인물이 입고 있는 옷은 오히려 그 물성이 강조되어 여러 시공을 품은 얼굴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인다. 꽤 단단하게 그림 밖 현실 혹은 그림의 현실에 상대적으로 더 가까이 기반을 둔 옷의 질감과 색은 지워진 얼굴과의 시간적 어긋남을 한층 증폭시키며 관객을 점점 더 모호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한 화면 안에서 일어나는 시공간의 불일치는 결국은 닿을 수 없는, 성취할 수 없는 숙명을 인지하면서도 계속 어딘가에 가까워지려는 작가의 반복적인 행위의 과정이자 태도를 동시에 드러낸다. 이는 글 초반에서 언급했던 전시 제목 ‘하얀 성’에서 이중성과 모순을 담고 있는 것과 맞닿아 있다.


형상이 풍경을 배경으로 등장한 시기는 2007년 <뷰어 Viewer> 연작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형상과 풍경의 관계에 대한 탐구는 2009년부터 시작한 <꽃밭 속의 형상 Figure in a Garden> 연작을 오가며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뷰어 Viewer> 연작은 그림의 재료가 되는 사진 이미지들이 외부의 사건이나 상황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데 있어 그것을 접하는 개인이 개입하거나 닿을 수 없음에 대한 인식을 하면서, 그 창이 되는 컴퓨터의 ‘뷰어’프로그램의 형식을 그림으로 가져온 것이다. 개념적인 장치에 더 가까웠던 뷰어의 형식은 처음에는 직접적으로 그림 안에서 사용하지 않았지만, 점차 화면에서 공간을 나누거나 인물과 배경을 구분하는 틀로서 실험해왔고, 이번 전시에서 그 연장선상에 있는 <뷰어> 연작의 근작 두 점을 선보인다. <뷰어> 연작은 이제는 처음의 시작과는 다른 지점에 와 있어 보인다. 어쩌면 작가가 사용해 온 ‘뷰어’의 형식은 더이상 그의 그림에서 유효하게 작동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 변화는 어느 한 연작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으로 한정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작가가 동시에 진행해온 <아이돌>, <꽃밭 속의 형상> 연작과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그러므로 각 연작들을 분리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오가며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전시에서 이재헌에게 큰 전환이 되는 변화가 감지되는 그림은 <꽃밭 속의 형상>(2021)이다. 다른 <꽃밭 속의 형상> 연작에 비해 이 작품은 형상과 배경 모두 마치 투명하게 탈색되거나 오히려 빛을 스스로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 이 연작은 그리고 지우기가 반복된 인물의 형상과, 그와 대조적으로 선명한 색이나 테두리를 여러 차례 강조한 풍경이 그 배경으로 구성 되어 있다. 그리고 여전히 그 관계는 형상과 풍경이 함께, 혹은 <아이돌> 연작이나 <꽃밭 Garden>(2020-2021)에서처럼 따로 전개되고 있다. 형상과 배경의 관계는 마치 <아이돌> 연작에서 얼굴과 옷, 배경과의 관계처럼, <꽃밭 속의 형상>, <뷰어> 연작에서 작가가 느끼는 시공간의 격차를 반영한다. 관객은 작가가 느끼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보이는 두 모순된 영역의 거리를 감각적으로 감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꽃밭 속의 형상>(2021)에서는 그런 거리의 시차가 가져다 주는 그림에서의 모호한 정서가 분열적 이라기보다는 균형을 잡아가려는 태도에 더 비중을 두고자 함을 느낄 수 있다. 형상과 배경의 거리가 이 그림에서 만큼은 좁혀졌고, 어쩌면 작가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붓질이 만들어 놓은 길은 향후 작품세계의 방향에 대한 단서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 이 그림에서는 지워져 있지만 지워져 있지 않으며, 형상과 풍경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화면 안에 부유하는 공간의 흐름은 마치 호흡하듯 그림에 공기를 불어 넣는다. 탈색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색은 여느 그림에서와 같이 빛을 품은 것처럼 생동하며 마치 빛 자체에 가까워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재헌의 그림에서 형상과 배경은 실존하는 형상과 미지의 공간이라는 상반된 양쪽을 반복적으로 오간 과정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지우고 그리는 그의 행위로 만들어진 시공간은 때로는 형상 안에서, 혹은 형상과 풍경 사이에 이중성의 거리를 좁혀 나가며 그것이 자석의 양극처럼 동시에 존재함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대상이 구체적일수록 점점 그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고, 거리를 둘수록 어느새 가깝게 다가와 있는 형상의 실체는 더이상 작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이미 작가가 알아채지 못한 사이 그림은 화면 안에서 만들어진 관계들을 조금씩 열고 닫으며 기존의 영역을 미세하게 움직인다. 지난 18년 동안 일관되지만 끊임없는 변화와 오랜 사유의 과정을 거쳐온 이재헌의 작업은 더딘 듯 보이지만 여전히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곳, 그가 보고자 하는 그 장면을 향해 있다.